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마음은 꽤 자연스럽다. 나 역시 그랬다. 굳이 튀지 않고,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으면서, 적당히 배려하고 이해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좋은 사람’이라는 기준이 점점 나를 조용히 밀어내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됐다.

거절하지 못하는 순간, 나는 점점 흐려진다
처음에는 사소한 부탁들이었다. 시간 괜찮냐는 질문에 사실은 바빴지만 “응, 괜찮아”라고 답하고, 내키지 않는 약속에도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마다 큰 문제는 없었다. 오히려 관계는 더 부드럽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런 선택이 반복될수록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워졌다. 내가 원해서 한 행동이 아니라는 걸 스스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절하지 않는 게 아니라, 거절하지 못하는 상태에 가까웠다. 그 작은 차이가 쌓이면서, 나는 점점 내가 어떤 선택을 원하는지 잘 모르게 됐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마음은 결국 ‘싫다’는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내 감정을 뒤로 미루는 데 익숙해졌다.
상대의 기준에 나를 맞추기 시작할 때
어느 순간부터는 상대의 반응이 내 기준이 되기 시작했다. 내가 이 말을 하면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이렇게 행동하면 실망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이 먼저 떠오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선택은 점점 줄어들었다.
처음에는 배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건 배려라기보다는 눈치에 가까웠다. 상대의 기분을 우선으로 두다 보니, 정작 나는 어떤 상태인지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보면 결국 남는 건 피로감이었다. 이유 없이 지치고, 별일 아닌데도 예민해지는 날들이 늘어났다.
좋은 사람이 되려는 기준이 내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상대에게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다 보면 관계는 유지될지 몰라도, 그 안에 있는 나는 점점 희미해진다.
나를 지키는 선택이 결국 관계를 남긴다
한동안은 ‘이렇게까지 해야 좋은 사람일까’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조금씩 행동이 달라졌다. 모든 부탁을 받아들이지 않고, 내 상태를 먼저 살펴보려고 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처음에는 불편했다. 괜히 분위기가 어색해질까 봐 걱정됐고, 관계가 멀어질까 봐 신경 쓰였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렇게 해서 멀어지는 관계라면 애초에 내가 나를 잃어가면서까지 붙잡을 필요가 없는 관계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나를 존중하는 선택을 할수록, 남는 사람들은 더 분명해졌다. 내 상황을 이해해주고, 내가 솔직해도 괜찮은 관계들. 그런 관계는 억지로 유지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요즘은 예전처럼 무조건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생각은 많이 줄어들었다. 대신, 나를 잃지 않는 선에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건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인 것 같다. 좋은 사람이 되려다 나를 잃어버리는 순간은 생각보다 조용하게 찾아온다. 그래서 더 자주, 의식적으로 나를 확인해야 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선택이 정말 내가 원하는 방향인지.